다른 직장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할 계획도 없지만 저에게는 퇴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회사에 들어오고나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술들은 왜들 그렇게 드시는지, 결재는 왜 법인카드로 하시는지, 전부다 가기 싫다는 회식은 누가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바쁘게 일을 하고 일과후에 자기 계발하면 될텐데, 왜 야근을 생각해놓고 천천히 일을 하는지,
실력이 먼저인지 인간관계가 먼저인지 그런 질문조차 이 회사에서는 왜 의미가 없어지는지.. 상사라는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도대체, 문화는 유연하고 개방적이고 창의와 혁신이 넘치고 수평적이어야 하며, 제도는 실력과 실적만을 평가하는 냉정한 평가 보상 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사람들은 뒤쳐질까 나태해질까 두려워 미친 듯이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술은 무슨 술인가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더라도,
도대체 이렇게 해도 5년 뒤에 내 자리가 어떻게 될지 10년 뒤에 이 회사가 어떻게 될지 고민에, 걱정에 잠을 설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이 회사는 무얼 믿고 이렇게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지 어떻게 이 회사가 돈을 벌고 유지가 되고 있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회사를 통해서 겨우 이해하게 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니부어의 집단 윤리 수준은 개인 윤리의 합보다 낮다는 명제도 이해하게 되었고, 막스 베버의 관료제 이론이 얼마나 위대한 이론인지도 깨닫게 되었고,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던, 코웃음 치던 조직의 목표와 조직원의 목표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대리인 이론을 정말 뼈저리게,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장 실감나게 다가오게 된 이야기는, 냄비속 개구리의 비유입니다. 개구리를 냄비에 집어넣고 물을 서서히 끓이면 개구리는 적응하고, 변화한답시고, 체온을 서서히 올리며 유영하다가 어느 순간 삶아져서 배를 뒤집고 죽어버리게 됩니다.
냄비를 뛰쳐나가는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그때 그때의 상황을 때우고 넘어가는 변화를 일삼으면서 스스로에게는 자신이 대단한 변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위안을 삼는다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사람이 제도를 만들고, 제도가 문화를 이루고, 문화가 사람을 지배합니다. 하지만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모두가 알고 있으니 변혁의 움직임이 있으려니, 어디에선가는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으려니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문화 웨이브라는 문화 혁신 운동을 펼친다면서, 청바지 운동화 금지인 '노타이 데이'를 '캐쥬얼 데이'로 포장하고, 인사팀 자신이 정한 인사 규정상의 업무 시간이 뻔히 있을진데,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원과의 협의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업무 시간 이외의 시간에 대하여 특정 활동을 강요하는 그런, 신문화 데이같은 활동에 저는 좌절합니다.
변혁의 가장 위험한 적은 변화입니다. 100의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30의 변화만 하고 넘어가면서 마치 100을 다하는 척 하는 것은 70을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 미래의 70을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더욱 좌절하게 된 것은 정말 큰일이 나겠구나, 인사팀이 큰일을 저질렀구나. 이거 사람들에게서 무슨 이야기가 나와도 나오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에, 다들 이번 주에 어디가야할까 고민하고, 아무런 반발도 고민도 없이 그저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월급쟁이 근성을 버려라, 월급쟁이 근성을 버려라 하시는데.. 월급쟁이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구조와 제도를 만들어놓고 어떻게 월급쟁이가 아니기를 기대한단 말입니까. 개념없이 천둥벌거숭이로 열정 하나만 믿고 회사에 들어온 사회 초년병도 1년만에 월급쟁이가 되어갑니다.
상사인이 되고 싶어 들어왔는데 회사원이 되어갑니다. 저는 음식점에 가면 인테리어나 메뉴보다는 종업원들의 분위기를 먼저 봅니다. 종업원들의 열정이 결국 퍼포먼스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분당 서현역에 있는 베스킨라빈스에 가면 얼음판에 꾹꾹 눌러서 만드는 아이스크림이 있습니다. 주문할때부터 죽을 상입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꾹꾹 누르고 있습니다. 힘들다는건 알겠습니다. 그냥 봐도 힘들어 보입니다. 내가 돈내고 사는것인데도 오히려 손님에게 이런건 왜 시켰냐는 눈치입니다. 정말 오래걸려서 아이스크림을 받아도, 미안한 기분도 없고 먹고싶은 기분도 아닙니다.
일본에 여행갔을때에 베스킨라빈스는 아닌 다른 아이스크림 체인에서 똑같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먹어보았습니다. 꾹꾹 누르다가 힘들 타이밍이 되면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모든 종업원이 따라서, 아이스크림을 미는 손도구로 얼음판을 치면서 율동을 하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어린 손님들은 앞에 나와서 신이나 따라하기도 합니다. 왠지 즐겁습니다. 아이스크림도 맛있습니다.
같은 사람입니다. 같은 아이템입니다. 같은 조직이고, 같은 상황이고, 같은 시장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사무실에 들어오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하루하루 적응하고 변해가고, 그냥 그렇게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제가 두렵습니다. 회사가 아직 변화를 위한 준비가 덜 된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준비를 기다리기에 시장은 너무나 냉정하지 않습니까.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일에 반복되어져서는 안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조직이기에 어쩔 수 없는 문제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말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조직이 가진 모든 문제들을 고쳐보고자 최선의 최선을 다 한 이후에 정말 어쩔 수 없을때에야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까.
많은 분들이 저의 이러한 생각을 들으시면 회사내 다른 조직으로 옮겨서 일을 해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조직을 가던 매월 셋째주 금요일에 제가 명확하게, 저를 위해서나 회사에 대해서나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웃으면서 동참할 생각도 없고 그때그때 핑계대며 빠져나갈 요령도 없습니다.
남아서 네가 한 번 바꾸어 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이 회사에 남아서 하루라도 더 저 자신을 지켜나갈 자신이 없습니다. 또한 지금 이 회사는 신입사원 한명보다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필요한 시기입니다.
제 동기들은 제가 살면서 만나본 가장 우수한 인적 집단입니다. 제가 이런다고 달라질것 하나 있겠냐만은 제발 저를 붙잡고 도와주시겠다는 마음들을 모으셔서 제발 저의 동기들이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사랑해서 들어온 회사입니다. 지금부터 10년, 20년이 지난후에 저의 동기들이 저에게 너 그때 왜 나갔냐.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정말 잘 되었을텐데.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10년 후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오늘의 행복이라고 믿기에, 현재는 중요한 시간이 아니라, 유일한 순간이라고 믿기에 이 회사를 떠나고자 합니다.
2007년 5월 2일
<성대사랑에서 펀 글>
이번에 신입으로 들어간 친구들 이야기 듣다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 3년만 채우고 나가서 MBA하러 유학가서 안돌아온다. 라고 공통적으로 하는데. 공감이 가요.
야근 수당은 쥐꼬리, 퇴근시간은 절대로 안지켜지고, 개인생활은 파탄나고, 집단 생활에 싫어도 참여해야 하고, 개인 발전은 전혀 없고, 그러다 보면 내가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인지, 회사가 나를 위해 있는 것인지 헷갈려지고.
대학원 다니면서 회사 때려치우고 오신분들 이야기 들어보면 몸값 무조건 높여서, 외국으로 유학가서, 거기서 생활하라구.아니면 국내에서 최고급 대우를 받으면서 살던지.
국내 기업의 글로벌 지수는 높아지는데회사 조직의 개개인에 대한 글로벌 지수는 그와 반대로 가는 거 같은 생각이네요.
<그 밑에 댓글> 조직이란게 엄청 무섭죠. 뛰어난 인재도 튀는 인재도 모두 조직이라는 이름하에 묻혀버리게 되는... 그리고 시스템이 수익을 내죠.
시스템이 갖춰지면 조직문화가 어떻든 유연성이 어떻든 수익을 내는거 아니겠습니까. 이건희 해외로 도피할때도 삼성은 돌아갔죠. 다만 그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디까지 갈런지가 문젠데 사직한 신입사원은 그걸 걱정한거 아닐까요?
사직서 보고 선배님이 쓰신 글..
이 글을 볼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모처럼 좀 일찍 퇴근하고 몇자 적어봅니다. 오늘 사내 메일로 알게모르게 후배님의 글이 돌았습니다.
부분적으로 많은 공감을 했고, 반성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글을 올리고 퇴사를 한 것은 아무리봐도 아직은 어린 행동이라고만 보입니다. 46기라면 작년에 입사해서.. 1~2월에 신입사원 연수 받고.. 3~5월에 부서 배치 받고 조금 업무 배우다가 6월경에 하계수련대회 1~2주 갔다왔으니... 소위 입사후 1년의 절반을 놀면서 보냈고... 실제 근무한 기간은 7월부터 올해 5월까지...11개월 정도 실무를 접했겠군요. 실무라는 것도 사수 밑에서 기본적인 일들... 시키는 일만을 하다가 퇴직을 감행한 것 같은데..
군대로 치자면... 훈련소 마치고, 후반기 교육 받고.. 자대 배치 받은 이등병이 소원수리 올리고 탈영한 것 같군요... 그러면서 그 이등병이 이렇게 외치는 거죠
"난 군대 알만큼 안다. 군대는 썩어빠졌고 경직되어 있어서 전쟁 발발시 아마 하루도 못버티고 전멸해 버릴꺼다." 너무 지나친 비약인가요? 사회에서 욕도 많이 들어먹고, 각종 비난에 시달리는 삼성입니다. 사람들은 막연히 국민의 혈세와 하청업체의 골수를 빨아먹고 성장한 기업이라고 욕합니다만...
네.. 그 사람들의 말대로 그 썩을대로 썩은 기업이라고 칩시다. 그런 기업에서 10만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는 물론 상식 이하의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나태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녕 10만명의 나태하고 관료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
오늘날의 삼성을 만들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10만명이나 되는 거대한 나태집단이 매년 수조의 순익을 올릴수 있다면.... 나태하지 않은 다른 수백개의 우리나라 상장 기업들은 수십조 이상의 순익도 올릴수 있겠군요..-_-; 삼성은 후배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태한 조직이 아닙니다. 아마 후배님의 부서에 무슨 문제가 있었거나 후배님이 오해를 한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 아마 지금즈음 부서장을 비롯한 주변 인원들에 대한 내사가 들어갔을 겁니다. 안그래도 요즘 내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제대로 걸렸다라고 밖에..--)
지금 이 순간에도 후배님의 말처럼 위기의식을 가지고 항상 자신과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 땀흘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후배님이 느끼셨듯이 저도 느꼈습니다. 제 동기들과 그 주변 사람들은 이제껏 만나본 사람중에 최고의 인재들입니다. 그 인재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아무 생각없고, 나태할리가 있습니까?
후배님이 이해할 수 없다는 회사의 조직문화... 그 문화 자체도 그 뛰어난 사람들이 일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정을 거듭한 것이 지금의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문화 역시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나가고 있구요
어떤 현상을 봄에 있어 겉모습만 바라 볼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되어왔는지.. 내재적인 요소를 보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후배님이 그렇게 느끼셨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그렇게 느꼈을 겁니다. 그리고 곧 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변화할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의지와 에너지가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뭐 아무튼... 후배님이 던진 조언은 구성원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많이 퍼져나가서
모두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될것 같습니다. 변화의 속도를 보다 빠르게 할 지도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부디 어딜 가던지 최선을 다해서 원하는 것들을 성취하시고, 나중에 동기들과 웃으면서 술 한잔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양쪽 다 문제가 있겠지 ㅋ 그렇지만 퇴사한 사람, 너무 이상론자가 아닐까. 게다가 읽어보니까 이 사람이 결정적으로 맘상한건 웬지 매주 셋째주 금요일날 놀러가자고 그런게 아닐까 싶기도하고 -_-;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댓글에 가장 공감이 간다 ㅋ 시스템만 잘 구축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똑똑한 사람은 필요없는 듯. 자체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메커니즘 또한 시스템의 일부로 존재하도록 한다면.